4월 13일 개막하는 오사카·간사이 엑스포 회장을 2km에 걸쳐 동그랗게 둘러싼 거대한 구조물. 얼핏 보면 SF 영화에 나올 법한 거대한 우주선 같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따뜻한 결이 느껴진다. 그 정체는 다름 아닌 일본산 삼나무와 노송나무로만 만든 세계 최대 규모의 목조 건축물이다.
회장의 '얼굴' 역할을 하는 이 구조물은 단순한 전시장이 아니다. 한 바퀴를 돌며 21세기 일본이 세계에 묻고 싶은 질문들—기후 위기, 기술, 노화, 공존—을 하나씩 만나게 되는 서사의 시작이자 끝이다.
2025 오사카·간사이 엑스포의 상징물인 '지붕 링' ⓒ 오사카·간사이엑스포 제공
🍡 건축가 후지모토 소스케가 설계한 '하나의 길'
이 구조물을 설계한 이는 젊은 건축가 후지모토 소스케. 그는 이 링을 "하나의 긴 산책로"라고 말한다. 지붕 링은 단순히 파빌리온들을 연결하는 '통로'가 아니다. 사람과 사람, 나라와 나라, 자연과 기술을 연결하는 새로운 공공 공간 실험이다.
이 링은 최대 20m 높이에, 폭은 30m에 이른다. 링을 걷는 길에는 일본 정원, 목재 벤치, 미니 전시장, 작은 숲까지 다양하게 숨어 있다. 관람객들은 걷기만 해도 마치 세계를 한 바퀴 여행하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야간이 되면 이 구조물은 더욱 특별해진다. 지붕 밑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LED 조명들이 마치 미래 도시의 실루엣처럼 빛나며 건축 그 자체가 하나의 미디어가 되는 경험을 제공한다.
'지붕 링'을 설계한 일본의 젊은 건축가, 후지모토 소스케 ⓒ 오사카·간사이엑스포 제공
🏗️ 안도 다다오와 '태양의 탑'의 대화
이번 엑스포의 어드바이저는 일본 현대 건축의 상징인 안도 다다오다. 그는 이번 엑스포에 대해 "100년 후의 세계 존속을 위해 우리가 지금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탐색의 장"이라고 표현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 '지붕 링'이 1970년 오사카 엑스포의 상징이었던 '태양의 탑'과 건축적 대화를 나눈다는 점이다. 당시 태양의 탑은 일본 고도성장기의 자신감을 상징했다면, 이번 링은 지속가능성과 자연 회귀를 말한다.
즉, 일본은 이번 엑스포에서 기술이 아닌 자연, 고도성장이 아닌 공존을 상징 건축으로 내세우며 50년 만에 건축의 언어를 바꾼 셈이다.
일본 건축계의 거장 안도 다다오ⓒ X
🧃 링 안에서 만나는 '정치적 건축'
건축은 언제나 시대의 거울이 된다. 이번 '지붕 링'도 예외는 아니다. 2km에 이르는 구조물에 들어간 목재 70%는 일본산, 그것도 전국 각지에서 공수된 것이다. 지역 임업 활성화, 탄소 흡수량 증대, 자급률 제고까지 이 건축물에는 '정치'가 촘촘히 박혀 있다.
최근 엑스포 현장을 시찰한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이번 엑스포는 일본의 새로운 시작을 보여주는 계기"라고 강조했다. 국가 브랜드 전략과 연결된 정책형 건축물임을 선언한 셈이다.
1970 오사카엑스포의 상징이었던 '태양의 탑' 당시 현장의 모습. ⓒ 태양의탑 공식 홈페이지
🚉 엑스포는 끝나고, 링은 남는다
1970년 엑스포가 끝난 후 '태양의 탑'은 쓰러지지 않은 유일한 유산이 됐다. 그렇다면 2025년의 유산은? 지붕 링은 철거하지 않고 지역 커뮤니티의 공유공간, 산책로, 시민예술 공간으로 재활용될 계획이다.
이는 단지 행사용 설치물이 아니라 엑스포 이후까지 삶의 일부로 흡수될 수 있는 구조물로 설계된 것이다.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단절된 메가이벤트 구조를 지역사회에 연결한 실험"
이라고 평가한다. 한마디로 '지속가능한 건축'이 실제로 구현되는 희귀한 사례다.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신사이바시역에서 오사카엑스포 행사장까지 지하철을 타면 약 18분이 걸린다@구글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