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신주쿠의 불빛은 대개 수직이다. 고층빌딩, 네온사인, 그리고 스카이라인. 그런데 그 화려한 도시의 한 귀퉁이엔, 시간도 사람도 수평으로 흐르는 골목이 있다. 바로 골든가이(ゴールデン街)다.
이곳엔 기묘한 풍경이 펼쳐진다. 고작 6평 남짓한 바들이 오밀조밀 붙어 있고, 외국인을 포함해 예술가, 직장인, 철학자, 취객, 작가, 연극인, 힙스터까지 각양각색의 인간 군상이 스스럼없이 뒤섞인다. 모두가 무언가를 찾는 듯한 얼굴로, 혹은 아무것도 찾지 않는 듯한 얼굴로, 골목 안으로 미끄러져 간다.
그 문 하나를 열면, 마치 다른 시대의 도쿄로 ‘입장’하는 느낌이다. 아니, 시대가 아니라 다른 차원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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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쿠 가부키초에 위치한 골든가이 ⓒ 사진=김경민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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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서 오셨어요?"로 시작되는 공통 세계
골든가이는 전후 혼란기에 불법 주점과 매춘가로 시작됐다. 가게들은 쪽방보다 작은 크기였지만, 대신 밀도는 도쿄 최고였다. 매뉴얼은 없었고, 감정이 있었다. 그렇게 1950년대부터 고작 몇 평짜리 바들이 200여개까지 늘었고, 불법에서 합법으로, 음지에서 예술의 피난처로 변모했다.
특히 70~90년대엔 문학과 예술가들이 몰렸다. 일본의 유명 영화감독, 소설가, 평론가들이 단골로 드나들며 이 좁디좁은 바에서 정치·예술·연애·죽음까지 이야기했다. 누가 옆에 있어도 상관없었다. '대화'가 있는 술집, 그것이 골든가이의 존재 이유였다.
오늘날에도 골든가이는 대화를 판다. 간판 없는 바, 사장님과 눈을 마주쳐야만 입장할 수 있는 곳도 많다. 마스터 1명, 손님 5명이 전부인 바에서 "어디서 오셨어요?"는 가장 흔한 시작 멘트다.
여긴 인간관계의 미니어처 세트장 같다. 당신이 누구든, 어쨌든 한 잔은 건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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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가이에는 골목마다 수십개의 바들이 각자의 컨셉으로 운영된다 ⓒ 사진=김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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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개발이 안 되는 이유가 있어요"
사실 골든가이는 수십 년간 재개발의 유혹을 받아왔다. 일본에서 가장 비싼 땅 중 하나인 신주쿠 한복판에 이런 저층 건물이 늘어선 골목은 도시계획자들에겐 비효율 덩어리일 뿐이다.
하지만 골든가이는 매번 살아남았다. 이유는 단순하다. 입주 상인들이 조합을 구성해 직접 사들였기 때문이다. 이 작은 골목은 재개발 기업도 못 건드리는 민간 공동체의 힘으로 지켜낸 공간이다.
거기에 더해 골든가이엔 스토리가 있다. 관광객에게 파는 건 맥주 한 잔이 아니라 특벼란 공간에 담긴 이야기다. 그런 정서적 콘텐츠가 지금의 일본 관광에서 얼마나 강력한 무기인지 이 좁은 골목이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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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시간에 찾은 골든가이. 화려했던 밤과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 사진=김경민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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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텐더는 여기서 인생을 듣습니다
골든가이의 진짜 주인공은 바텐더들이다. 그들은 '음료만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어떤 이는 전직 연극 연출가, 어떤 이는 은퇴한 셰프, 어떤 이는 재즈 마니아다. 전업 바텐더는 드물고 대부분은 본업 외 정체성을 이 골목에서 펼친다.
"술이요? 그냥 핑계일 뿐이죠. 사실은 사람 이야기 들으려고 바 열었어요." 'Snug'이라는 바를 운영하는 중년 남성은 이렇게 말했다. 매일 밤 그는 5명 남짓한 손님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는다. 때로는 손님끼리 토론을 벌이고, 때로는 누가 울기도 한다.
한국처럼 친구 없으면 못 가는 술집이 아니다. 오히려 낯선 사람끼리 마주보며 앉는 것이 룰이다. 익명의 도시에서 익명의 사람들과 우정을 나누는 장소. 이것이 골든가이의 진짜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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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골든가이는 일본을 느끼고 싶은 외국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 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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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인에게 가장 일본적인 공간
골든가이는 역설적으로, 가장 일본적인 공간이면서도 외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도쿄 방문 외국인 관광객 5명 중 1명은 골든가이를 일부러 찾아간다고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여긴 일본의 진짜 일상을 경험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텐동도, 스시도, 료칸도 아닌 낯선 사람과 인간적인 대화를 나누는 경험이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무엇보다 강렬하다.
일본인도 같은 이유로 이곳을 찾는다. 신분, 직함, 연봉을 내려놓고 인간 그 자체로 돌아가는 가장 빠른 방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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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쇠락인가, 부활인가 – 골든가이의 내일
코로나19는 골든가이에도 큰 타격을 줬다. 외국인 관광객 발길이 끊기고, 고령의 바텐더들이 문을 닫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다시 활기를 되찾고 있다. 일부 바는 젊은 층이 인수해 리뉴얼했고, 유튜버·에세이 작가·포토그래퍼들이 골든가이로 몰리고 있다.
다다미 위에 맥북 시대, 이 구식 골목은 가장 힙한 콘텐츠 생산지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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