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에서 그리 멀지 않은 효고현의 '히메지성(姫路城)'을 처음 본 사람 대부분은 이렇게 말한다. "진짜 성 같아."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꽤 정확한 표현이다. 히메지성은 그 자체로 '일본이란 나라에서 성이란 어떤 존재였는가'를 체현한 건축물이다. 일본 전국의 100개가 넘는 성 중에서도 히메지성이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이유는 분명하다. 아름답고, 거대하고, 살아 숨 쉬는 '실물'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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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의 교과서, 전쟁과 건축의 집대성
히메지성이 처음 세워진 것은 무려 1333년, 무로마치 막부 성립 직전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보는 히메지성은 1609년 완공된 형태다. 바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사위, 이케다 테루마사가 지금의 거대한 성곽을 지었다. 전국시대와 에도 초기의 최신 군사 건축술이 총동원됐고, 이후 단 한 차례의 전투도 치르지 않았음에도 이 성은 "일본에서 가장 완벽한 전쟁 요새"라 불린다.
고래 등처럼 굽이굽이 휘어진 길, 복잡하게 얽힌 문과 성문, 적을 미로처럼 빠뜨리는 구조. 평지 위에 지었지만 산성보다 더 정교한 방어 체계를 갖췄다. 총과 화살이 동시에 발사되는 마사가루 창구, 내부에서 돌을 던질 수 있는 이시오토시, 사방이 시야에 들어오는 망루까지. 건축이 무기였던 시대의 결정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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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메지성 박물관 내부에 전시된 에도시대 히메지성 일대의 축소 모형. 중앙의 천수각을 중심으로 외성과 내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미로처럼 설계된 골목과 방어용 해자, 무사 저택군 등이 정교하게 재현돼 있다. ⓒ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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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0년간 단 한 번도 무너지지 않은 이유
히메지성이 진짜 '성'처럼 보이는 이유는 단순히 외관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실제 방어 기능이 있는 채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대부분 성은 에도시대 이후 해체되거나 메이지 정부의 폐성령으로 허물어졌다. 히로시마성, 오사카성, 나고야성...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이들 대부분은 1960년대 이후 콘크리트로 복원된 모조품이다.
히메지성은 다르다. 대공습으로 폐허가 된 1945년에도 이 성은 기적적으로 피해를 입지 않았다. 미군의 폭탄이 천수각에 떨어졌지만 불발됐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지역 시민들이 '백로성 보존회'를 결성해 성의 수리를 위해 돈을 모았다. 1956년부터 7년에 걸친 대보수공사가 시작됐고, 이후에도 주기적인 해체보수(헤이세이 대수리 등)가 이어졌다. 일본의 전통 목조건축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교과서적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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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메지성 내부 모습. 콘크리트로 복원한 일본 전국의 다른 성들과 달리
히메지성은 목조 건축이 살아 있다. ⓒ 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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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도시대의 일상을 품은, 살아 있는 성
히메지성이 특별한 이유는 외형만이 아니다. 내부도 그야말로 시간의 캡슐이다. 천수각에 들어서면 나무 계단이 그대로 남아 있고, 성의 바닥은 400년 전의 나무 결이 그대로 살아 있다. 무사의 쉼터, 무기고, 비상 대피로, 방어용 구멍까지… 그냥 관광용 복제품이 아니라 기능하는 건축이다.
또한 흥미로운 점은 성의 1층에는 한 명의 여자 유령이 산다는 전설이 있다는 것. 이름은 오키쿠(お菊).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후 밤마다 우물 속에서 접시 개수를 센다는 전설은 일본 전국의 괴담 중 가장 유명한 이야기 중 하나다. 오키쿠의 우물은 지금도 히메지성 안에 남아 있으며 유령의 전설은 수많은 일본 드라마와 애니메이션의 모티프로 활용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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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메지성 외곽 해자(外堀)를 따라 운행되는 전통 나룻배 체험. 승객들이 삿갓을 쓰고 목재 배에 올라타 에도시대 복장을 한 사공의 안내를 받으며 성 주변을 유유히 감상하고 있다. ⓒ 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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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로의 우아함과 극도의 치밀함, 그 공존
히메지성의 별명은 '시라사기조(白鷺城)', 즉 백로성이다. 이 별명은 흰 회반죽으로 마감된 외벽과 마치 새가 날개를 편 듯한 천수각의 형상에서 유래됐다. 거대한 구조임에도 유려하고 정돈된 선이 인상적인 이 건물은 일본인의 미적 감각을 가장 잘 표현한 건축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아름다움에만 주목하면 이 건축의 본질을 놓칠 수 있다. 히메지성은 정교한 전쟁 건축물이다. 전체 설계는 적의 침입을 어떻게 방해할 것인가에 맞춰 짜였고, 각 구성 요소 하나하나가 기능적이다. 이는 일본 건축이 단지 아름다움이 아닌, 실용성과 미의 조화를 얼마나 중요시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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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메지성 천수각에서 내려다본 히메지 시내 전경. 지붕 위 장식물인 '샤치호코(鯱鉾)'가 뚜렷하게 보인다. 샤치는 불을 부르는 용의 머리와 물고기의 몸을 합친 상상 속의 동물로
화재를 막는 부적 의미를 지닌다. @ 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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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일본에서 히메지성이 갖는 의미
오늘날 히메지성은 단지 관광지가 아니다. 이곳은 일본의 역사교육 현장이며 전통건축의 기술을 보존·전수하는 살아 있는 공방이다. 히메지시 내에는 목조건축 전문가와 전통 석회공예 장인이 상주하며 성의 유지관리에 참여한다. 특히 2015년 헤이세이 대수리 이후 일본 내 목조건축 보수 기술이 세계문화유산 관리 기준으로 격상되었고, 한국과 중국에서도 벤치마킹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코로나 이후 일본 내국인 관광객이 크게 늘며 다시금 일본인의 자존심으로 재조명받고 있는 이 성은 단지 고성이 아니라 기억의 보루이자 기술의 보고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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