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도톤보리 강변, 에비스바시(戎橋) 위에서 찍은 인증샷에는 으레 그가 등장한다. 두 팔을 쭉 뻗고 달리는 자세. 파란 하늘 아래 하얀 유니폼 차림의 남자. 바로 '글리코맨'이다. 그는 1935년부터 이 자리에 있었다. 간판이란 단어로는 모자란 존재. 이제는 도시를 상징하는 얼굴, '오사카의 상징'이 됐다.
간판은 원래 한 브랜드의 광고였다. 캐러멜로 시작해 종합과자로 성장한 에자키 글리코(江崎グリコ)가 "간식을 뛰며 먹자"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며 만든 것이 바로 이 달리는 남자다. 첫 번째 글리코맨은 33m 높이의 거대한 네온 간판으로 당시 일본 최대 규모였다.
광고가 도시가 되고, 도시가 기억이 되는 과정. 이 간판이 그 전형이다.
오사카의 상징이 된 글리코 간판 ⓒ X
🕶️ 시대를 비추는 거울, 6번의 변신
글리코 간판은 단순한 상업광고를 넘어 시대의 풍경을 품어왔다. 지금의 간판은 여섯 번째 버전. 원래는 유화 일러스트였지만 점점 LED로 바뀌었고, 2014년 6대째 간판부터는 태양광 발전을 사용하는 친환경형으로 바뀌었다.
흥미로운 건 그 변신들이 언제나 사회의 흐름과 연결됐다는 점이다. 전쟁 중에는 등불을 끄라는 정부 지침에 따라 불이 꺼졌고, 버블기에는 조명 애니메이션이 장착됐다. 2000년대 들어선 월드컵 응원이나 일본 지진 때 희망 메시지를 전하는 등 단순 광고를 넘어 '공공적 표현물'로 기능했다. 간판 하나가 사회적 메시지의 발신지였던 셈이다.
밤에 에비스 다리에서 바라본 글리코 간판 ⓒ 김경민 특파원
🧠 '간판의 얼굴'이 된 이유
일본에는 간판이 많다. 도쿄 신주쿠, 오사카 우메다, 요코하마 이세자키쵸. 하지만 도톤보리 글리코는 '국민 간판'이 됐다.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지속성이다. 9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자리를 지키며 일본인의 기억 속에 뿌리내렸다. 둘째, 변형 가능성이다. 스포츠 경기, 사회 이슈, 계절 행사마다 글리코맨은 모습을 바꿔왔다. 변하지만 본질은 유지한다는 안정감. 마지막으로는 참여 가능성이다.
글리코 간판 앞에서 팔을 들고 똑같이 포즈를 취하는 행위는 일종의 의례처럼 되어 있다. 누구나 그 세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 '참여형 풍경'이 바로 현대 도시 콘텐츠의 핵심이다.
종합과자 회사인 에자키 글리코의 주요 제품들. 우리에게도 익숙한 제품들이 많다 ⓒ X
🕵️ '간판 미제 사건'의 중심이었다고?
1980년대 일본을 뒤흔든 '글리코 모리나가 사건'도 이 간판을 거치며 전설이 됐다. 당시 에자키 글리코 사장 자택에 괴한이 침입하고, 이후 유통 대기업 모리나가를 포함한 식품업체들을 상대로 협박이 이어진 사건이었다.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았고, 일본 최대 미제사건 중 하나로 남았다. 수사당국은 도톤보리 글리코 간판 부근에서 수상한 인물을 촬영한 CCTV를 단서로 쫓았지만, 결국 미궁에 빠졌다.
이 사건은 글리코 간판을 단순한 상징이 아닌 사회적 드라마의 무대로도 각인시켰다. 광고물이 아니라 '이야기가 있는 건축'으로 바뀐 순간이었다.
에비스 다리와 글리코 간판을 위에서 바라본 풍경
붐비는 시간대에는 원형 에비스 다리가 사람들로 가득 찬다 ⓒ X
📸 관광지 이상의 콘텐츠 플랫폼
글리코는 지금도 이 간판을 브랜드 자산으로 삼아 적극 활용한다. 간판 자체를 AR 콘텐츠로 연결하거나, 오사카 시와 연계한 이벤트 장소로 쓰는 식이다. '상업광고→공공 아이콘→참여형 콘텐츠 플랫폼'으로 진화한 셈이다. 한국에서도 글리코맨을 아는 사람이 많지만 이렇게까지 입체적인 스토리가 숨겨져 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도톤보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순간, 우리는 의식하지 않아도 일본 현대사의 한 장면과 연결되는 셈이다.
도톤도리 강에서는 관광 유람선을 탈 수 있다 @ 김경민 특파원
✍️ 글리코맨이 남긴 것
글리코맨은 브랜드 마스코트를 넘어 '도시와 개인의 접점'을 상징하는 존재가 됐다. 관광객에게는 추억의 배경이자 지역 주민에게는 성장의 풍경이며, 브랜드에게는 가장 오래된 자산이다. 광고판 하나가 90년간 끊임없이 재해석되며 기능할 수 있었던 건 그 안에 시대, 기술, 참여, 감정이 겹겹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도톤보리의 밤은 네온보다 오래 기억될 이야기를 가진 얼굴 하나 덕분에 더욱 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