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쿄도청에 들어간다는 건,
일본의 정신세계로 들어가는 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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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를 걷다 보면 이상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왜 이 나라는 행정청 하나 지을 때도 건축가의 내면세계를 이렇게 정면으로 반영해버리는 걸까 싶은 느낌. 그중 끝판왕이 있다. 바로 도쿄도청이다.
'고층빌딩의 도시' 신주쿠에서조차 도쿄도청은 다르다. 으리으리한 쌍둥이 탑, 성벽처럼 둘러친 정문, 파이프오르간처럼 솟은 외관의 리듬. 마치 과거 도시국가의 성채이자 미래 디스토피아 세계관의 본부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그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보다, 그 자체가 어떤 '표현'이라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단순한 청사가 아니라 일본의 집단 무의식이 드러나는 장소로 평가되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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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 고딕? 아니, 이게 일본입니다
도쿄도청은 1991년 완공됐다. 설계자는 일본 건축계의 대부, 다니 켄조(丹下健三).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요요기 국립체육관, 후지TV 본사 등을 만든 인물이다.
도청은 그의 후기작에 해당하며, 다니 자신이 "일본이라는 나라의 권위를 형상화한 최종 작업"이라고 말했다. 그 말처럼 건물은 권위 자체다. 뉴욕 성패트릭 대성당을 연상시키는 쌍탑 형태, 바티칸 같은 광장 설계, 고딕 수직 리듬과 콘크리트 패턴까지. 일본의 신중앙정부를 만들어낸 듯한 위용.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건물에는 일본 전통 건축의 정신도 반영돼 있다. 예를 들어 외벽은 겉보기엔 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일본식 백색 콘크리트 패널이다. 그리고 로비 천장은 사찰 지붕을 연상케 하는 격자형 구조로 설계돼 있다. 권위와 전통, 서양과 일본, 미래와 과거가 하나의 건물 안에서 화해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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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도청 꼭대기의 무료 전망대. 날씨가 좋은 날은 후지산도 볼 수 있다 ⓒ 김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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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을 잃어야 제대로 본다는 도청 관광법
도쿄도청은 관광객에게도 유명한 명소다. 그런데 사람들이 도청을 찾는 이유는 오히려 도쿄가 안 보이는 풍경을 보기 위해서다.
도청의 쌍둥이 타워 꼭대기에는 무료 전망대가 있다. 도쿄타워보다 높은 202m, 도쿄스카이트리보다 접근성이 좋은 곳. 하지만 이 전망대에서 보이는 건 그 유명한 도시 풍경이 아니다. 건물 사이를 꿰뚫는 후지산 실루엣, 야경으로만 반짝이는 신주쿠 주상복합지대, 그리고 멀리 요코하마의 항만 빛. 도쿄 중심에 있지만 도쿄 바깥을 바라보는 풍경. 그래서 더 특별하다.
그리고 그 전망대까지 가는 과정도 예사롭지 않다. 건물 내부 구조가 미로처럼 설계되어 있어서 처음 간 사람은 꼭 길을 헤맨다. 한 출입구를 잘못 들어가면 본청에서 제2청까지 외부를 걸어가야 하고, 엘리베이터도 본청/북관/남관 전용이 전부 다르다. 그건 의도된 디자인이다. "도쿄를 통치하는 곳은 복잡해야 한다"는 은유이자 도쿄 그 자체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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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도청 무료전망대에는 피아노 한대가 놓여져 있다. 누구나 연주가 가능하다 ⓒ 김경민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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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청사? 공포 배경? 도청은 장르다
도쿄도청은 수많은 영화와 게임, 드라마의 배경이 됐다. 왜냐고? 그냥 그림이 된다. 존재감만으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건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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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질라 VS 메카고질라>에서 괴수가 부숴야 할 상징물 1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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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르소나5>에서는 ‘악의 본거지’로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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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트라맨>에선 지구방위대 본부로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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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패스하면 무조건 이곳 가서 사진 찍는다'는 성지
그런데 진짜 흥미로운 건 이곳이 일본의 민주주의 상징으로 의도되었다는 점이다. 입구에 보면 시민 상담 창구가 가장 먼저 보인다. 지하에는 도쿄 시민 갤러리와 특산품 마켓이 있고, 지상광장에는 시민 퍼포먼스도 자유롭게 가능하다. 겉모습은 고딕 성채지만 안은 열려 있다는 것. 이 극단적인 외관과 속성의 간극이야말로 도쿄도청을 가장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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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인근인 신주쿠중앙공원에서 바라본 도쿄도청 ⓒ 김경민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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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도쿄도청은 건축 그 이상이다
이 건물은 일본 행정의 물리적 중심이지만, 동시에 건축이라는 매체로 표현된 정치적·문화적 언어의 결정체이기도 하다.
다니 켄조는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국가를 설계한 것이 아니라 도시의 기분을 형상화했다."
도쿄도청은 그런 '도시의 기분'이 콘크리트로 응결된 결과물이다. 일본의 현대성, 불안감, 권위주의, 동시에 시민에 대한 개방성까지 모두 담겨 있다.
도쿄를 사랑한다면 혹은 일본의 건축과 문화가 왜 이렇게 복잡한지 궁금하다면, 도쿄도청에 가야 한다. 그리고 길을 잃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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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루미네이션 시즌에는 며칠간 화려한 조명 쇼를 하기도 한다 @ 김경민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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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 행정 허브의 속사정
도쿄도청이 단지 멋진 외형만 가진 상징물이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이곳은 도쿄라는 거대 도시를 24시간 돌아가게 만드는 운영실이다.
예산 규모는 웬만한 국가보다 크다. 2024년 도쿄도 일반회계 예산은 8조4000억엔. 이는 체코·그리스의 국가예산과 비슷한 규모다. 도쿄도청은 이 예산을 굴려 도쿄 시민 1400만명의 복지, 교통, 교육, 재난 대응, 감염병 관리, 중소기업 지원 등 거의 모든 행정영역을 관장한다.
특히 재해 대응 센터는 주목할 만하다. 도청 지하에는 최신 방재 시스템이 탑재된 재난대책본부가 있다. 대지진이나 팬데믹 상황에서 도쿄도지사가 이곳에서 실시간 브리핑을 한다. 도쿄도청은 관광 명소이자 실전 사령부라는 이중의 얼굴을 가진 셈이다.
도쿄도청은 최근 정치의 쇼룸 역할도 하고 있다. 유리코 고이케 도지사는 청사 외벽을 종종 무지개 조명으로 물들이거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광고판으로 탈바꿈시키기도 했다. 일각에선 "공공청사가 마케팅 공간이 돼도 되나"는 지적도 있지만 도쿄는 그런 실험조차 거리낌 없이 수용한다.
권위, 행정, 상징, 정치, 대중성. 도쿄도청은 지금도 이 모든 것의 중심에서 흔들림 없이 도쿄라는 도시 그 자체를 연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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